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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더 이상의 전도를 멈춰야 한다. 본문

예배 이야기

교회는 더 이상의 전도를 멈춰야 한다.

나중된자 2008. 3. 10.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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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나는 애스센스를 달고 있는 블로그를 시작하고서는, 주변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블로그를 전도하는 전도사였다. 그래서 밥을 먹다가도 '저기, 블로그라고 얘기 들어보셨죠?'라고 말을 꺼내는 것이 내 모든 대화의 스타트였다.
  ''웹 2.0'시대에 대해서는 들어보셨나요?' 그러고서는 듣는 사람이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지 아닌지도 상관하지 않고, 내가 아는 블로그얘기로 온통 시간을 보내기 일수였다. 이런 나의 몇일동안의 반응에 조금 지겨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블로그에 관심을 가졌고, 특히 '돈 벌 수 있는 블로그'라는 카피에 거의다가 개인 블로그를 동경하게 만들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종교인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전도를 한다. 또 전도를 좋아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또 남들에게도 유익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남다른 열정으로 말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즐겨하는 온라인 게임에 대해서 전도하는 친구들도 보았다. 처음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자신이 하는 게임을 직접 보여주면서 화려한 전투신을 직접 보여주거나, 내가 새로 아이디를 발급받는 것을 도와주고, 아이템을 이것저것 챙겨주기까지 하면, 나도 모르게 전도되어서 그 게임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읽었던 책을 전도하고, 그 책에 관심을 보이면, 직접 책을 사주기도 하는 사람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좋은 음식을 전도하다. 어떤 사람은 좋은 옷을, 어떤 사람은 좋은 건강법을 전도하기도 한다.

이들 전도자들은 비지니스와 그 성격이 다르다. 이들은 그들이 전하는 도에 있어서 댓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상대방과 100% 공유되기를 열정적으로 바란다. 그런 목적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전도법으로 사람들을 전도하는데, 그들이 가장 가슴아플때가 언제인 줄 아는가? 그들이 전도하는 그 어떤것에 대해서 상대방에 끝까지 흥미를 보이지 않을 때, 좌절한다.ㅎ

이렇게 우리 모두는 전도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자발적이고 열열한 전도자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교회안의 전도도 이러한가?
아니다. 교회안의 전도는 문제가 있다.



 기독교의 '도'는 아름답다. 어떤 찬양의 고백처럼 죄로 죽어야할 나와 영원한 죽음사이를 가로막으신 하나님의 이야기가 바로 기쁜 소식, 복음인 것이다.

 성경에 보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과 평화가 어김없이 찾아왔고, 그 기쁨과 평화는 자발적인 전도자들에게 의해서 세상을 향하여 끈임없이 전도되어 왔다.
 기독교의 복음 전도는 다른 종교에서 볼 수 없을 만큼 강력했는데,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세상이 감당 못할 정도 였으니, 이렇듯 세상을 바꾼 그들의 열정은 '블로그'나, 자신의 '노트북'을 전도하는 사람들과 다른 차원에 열정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실의 기독교는 전도할 능력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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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안에서 복음을 듣고 배우고 노래로 만들어 부르기까지 하지만, 기쁨과 평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서 그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니까, 교회의 제도권 안에서 목회자와 교인들간에 관계를 잘하는 일을 통해서, 교회안에서 봉사하는 일들을 통해서, 십일조를 포함한 각종 헌금을 정성스레 드리는 일들을 통해서 자신들의 신앙을 만족하고 있는 모습이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성경에서 나타난 기쁨과 평화가 있을리가 만무다. 이런한 교인들에게 이제 당신이 구원을 받았으니 성경에서 말하는 기쁨과 평화로 나가서 전도하라고 다그치지만, 사람들에게 교회를 전도할만한 힘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들도 교회안에서 구원을 담보로 질머진 짐이 한짐인데, 누가 그러한 부담을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도하겠는가?

이것이 교회가 더이상의 전도를 멈춰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대부분의 교회가 새로운 사람을 전도해 와도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교회가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하나님과의 관계를 배우고 익히기 전에, 병든 교리와 세속적인 기복신앙에 젖게 만드는 것이 교회이다.

능력이 바닥 난 교회가 아직도 자신들만의 부흥을 부르짖고 있으니, 이것이 교회안에 재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총전도주일이라는 이름으로 영혼구원의 구호를 앞세워서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재적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전도의 방법은 다단계 회사의 방법만큼이나 치밀해졌는데, 다른것이 하나 있다면 그 모든 것을 기도하면서 하라는 주문뿐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고 그랬다.

 몸은 천천히 자라나는 것이다. 발달한 현대 의학으로 근육강화제를 맞히고, 골반을 깎고, 체면을 걸어서 수일내에 몸을 불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건강한 몸을 기대할 수는 없다. 교회가 몸이라면 몸이 자연스럽게 커가듯이 인내를 가지고 지켜볼 여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교회가 교인들로 하여금 진짜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인다면,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기쁨과 하늘의 평화를 교인들에게 마음에 부어주시고, 이들 모두를 자발적이고 열정적인 전도사로서 세상에 보내시고, 그분의 부흥을 이뤄가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세상에서 교회가 할 일이 있고,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다.

교회가 기업처럼 부흥하면 안된다.
그런 교회들이 있다 손 치더라도 그러한 교회들이 부흥의 모델이 되어서는 안된다.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부흥을 준비하며 교회안을 정비해야 한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보내주실 때, 그들 모두를 구원을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지를 바란다.

 목회자들이 CEO같은 모습을 버리고, 세상의 성공주의와 세속화 된 교회의 때를 벗겨내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 교회 안에는 자신의 이익을 바라보고 전도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가? 아니면
자발적이고 열정에 넘치는 전도자들로 가득차 있는가?

“나는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하도록 조언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사람이 고안한 조직이나 기술을 원하지도 않는다. 나는 단지 사람이 만든 부흥이 아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부흥을 바랄 뿐이다. 나는 소위 부흥사나 부흥설교자를 원하지 않는다.” - 존 에인절 제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