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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와 인과응보 그리고 윤회 본문

예배 자료실/신 학

카르마와 인과응보 그리고 윤회

나중된자 2008. 4. 25. 00:54

너무나 거창한 주제들이라 얘기를 어디서 부터 풀어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자주 발생하곤 합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많은 수의 수행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으며 종교에 오래 몸 담았던 성직자들도 명철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지인으로 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멀더님! 한가지 물어 봅시다. 최근 어떤 B명상단체에서 소위 깨달았다고 자칭하는 지도자가 신도들을 성폭행하고 거액의 금액을 갈취했다고 하더이다. 그런데 그 지도자와 열성 신도들은 그것을 인정도 안할 뿐 더러 깨달은 자에게는 세속의 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며 적반하장으로 나온다고 하더이다. 대체 어찌된겁니까? 도판이 정말 이렇게 드러운 곳입니까?"

평소에 존경해 오던 지인께서 그 B명상 단체의 지도층 인사와 대면을 한 후 이같은 사실을 알고서는 분기탱천하여 전화를 하신지라 일단 즉답을 피하고 화를 누그러뜨리시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형님! 마하리쉬 선생께서 말씀하시길... 살인을 하거나 강간을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마음에 담아 두지 않으면 어떠한 카르마도 작용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말 마하리쉬 그 양반이 그런 말을 했습니까?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고 지금까지 모든 정신체계가 허물어지는 것 같아서 답답하기가 이를데 없습니다."

대부분의 성자들은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방편을 사용합니다. 비유를 들어 쉽게 설명하는 것이죠. 하지만 인간의 언어란 것이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방편을 다른 뜻으로 해석하여 더 큰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그런 대표적인 경우가 "수행하는 사람들은 너와 내가 없음을 추구해야 하니 남의 여자를 건드려도 되고, 시비분별을 하면 안되니 신도들의 재산을 가져간들 무엇이 문제되겠느냐"는 망발들입니다.

그러면서 마하리쉬 선생 같은 성자들의 전체적인 말씀 중에서 앞꼭지 뒤꼭지 모두 따 버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말만 골라서 혹세무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하리쉬 선생의 저 말씀은 100% 맞는 말입니다. "육체나 마음이 내가 아니다"는 것을 확철대오하게 깨달은 자는 그 무슨 행위를 하든 카르마가 적용되지 못하고 물러간다는 뜻입니다.  적용될 육신이나 마음이 이미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 말씀은 제자들에게 극단적인 경우를 예로 들어서 가슴에 깊이 못박히게 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저 말씀은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은 자의 진면목은 "사랑"과 "자비"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원론이 없어지고 모두가 '진아(眞我; 참나)'라는 것을 깨쳤기에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사랑스럽고 자비심이 넘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은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업보를 받지 않지만, 반대로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을 할래야 할 수도 없습니다. 깨달은 자에게는 애초부터 강간이나 금품갈취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어떤 단체에 몸을 담건 어떤 스승을 만나건 이것 하나만 명확히 가슴에 담고 있으면 됩니다. 깨달음은 "사랑"과 "자비"... 이것 외에 어떤 미사여구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그 단체나 스승이 저런 성인들의 말씀을 빌미삼아 모순된 행동을 하는지 이것만 적용시키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가슴 아프면 남도 가슴 아프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논어에서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성인들의 말씀은 이처럼 간단하면서도 명확합니다. 그리고 위대합니다. 어려운 것은 요설일뿐입니다. 내가 제대로 깨치지 못했기에 말이 어렵게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쉬운 것만이 진리"라는 오쇼 선생의 말씀은 언제든 새겨 들어야 할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시비분별을 떨구어 버리고 이원법을 넘어서 카르마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무조건 인과응보의 무시무시한 상벌 체계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을 풀어 나가기 전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원인"과 "결과"라는 두 단어입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는 아주 극히 자연스러운 명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진실일까요?

답은 No입니다.
"어떤 현상에 대한 원인이 없다"는 것은 현존 인류 중에서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분 중의 한분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운동역학 테스트로 진단해 봐도 진실도가 999로 측정이 됩니다. (1000이 만점)

그렇다면 불교의 근간을 이루는 연기법(緣起法)은 무엇인가요? 어떤 현상이 어떤 것에 연하여 일어 난다는 것인데 이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나타난다고 받아 들이며 "죄의식" 컴플렉스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과응보적 죄의식은 기독교의 원죄의식 못지 않게 지금껏 인류에게 큰 오류와 오해를 불러 왔습니다. 순기능도 있었지만 공포심에 휩싸이게 하는 역기능이 너무나 컸던 것이죠.

그렇다면 뭐란 말인가?
전생에 착한 일을 하면 다음생에 고관대작집에 태어나고, 못된 짓을 하면 빈민촌에 태어나 죽도록 고생한다는 것이 모두 뻥이란 말인가?

그래서 석가모니께서 깨달은 후에 "이 법은 참으로 깊고 오묘하여 미혹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이 세상 모든 일은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의해 일어난다고 이해 하시면 됩니다.

꽃이 피어납니다.
그 꽃은 왜 피어나는 것일까요?
햇빛이 원인이 되어 피어 나는 것일까요? 촉촉한 이슬비가 원인이었던 것일까요? 영양가 많은 땅이 원인이 되어서 피어나는 것일까요?

햇빛, 이슬비, 토양...이 모든 것이 꽃을 피어나게 하는 조건일 뿐 원인이 아닙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이미 씨앗 속에 내재된 신의 힘입니다. 원인은 강제적인 성격을 띄지만 조건은 자연스러움을 전제로 합니다. 이 우주에 깃든 신성에는 절대로 '강제'라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인과응보는 원인과 결과에 의한 강제적 상벌체계가 아니라 조건에 의한 밸런스(조화)의 시스템입니다. 마하리쉬 선생은 이것을 일컬어 무인론(無因論)이라고 하시면서 현상계의 모든 인과를 철저히 부정하고 계신데, 용어들이 힌두교 사상을 근간으로 한 것이라 전문적인 내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모두 설명을 하기가 그렇지만 간단하게 압축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분리되어 있는 객체들이 있어야만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마음속에만 있는 착각일뿐 실상은 오직 진아만이 유일하기 때문에 각각 떨어진 객체란 있을 수 없으며 그러므로 원인과 결과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너무 어려우시다면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어 드리겠습니다.

20세기의 노스트라 다무스로 알려진 위대한 예언가 "에드가 케이시"를 대부분 아실겁니다. 이 양반은 최면 상태 속에서 "아카식 레코드"라는 천상의 지식 창고에 들어가 이 우주의 모든 비밀을 퍼다 날으신 분으로 유명합니다.

이 분이 하루는 마녀 사냥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접속을 하셨는데 거기서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녀사냥에 대하여 잘 모르시는 분들은 제가 쓴 영화 칼럼 <마녀를 위한 변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마녀사냥에 참여하여 죄없는 노파나 과부들을 잡아다가 눈알을 빼고 사지를 찢고 불태워 죽인 흉악한 사람들이 후생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봤더니 놀랍게도 "변호사"를 많이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변호사라?
유식함과 부의 상징인 직업이죠.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최고의 직업입니다. 그런데 전생에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사람들이 왜 변호사 같은 좋은 직업을 가지고 태어났을까요?

여기서 바로 아까 말씀 드린 밸런스의 문제가 나옵니다. 인과응보의 죄의식으로 따지자면 말이 안되는 문제지만 조화를 통한 밸런스의 문제로 따지면 쉽게 이해가 가는 문제인 것이죠.

그들은 그냥 변호사가 아니라 "인권" 변호사들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생에 다른 이들의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았으니 그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인권 변호사로 재 탄생한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조화로운 신의 섭리입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 볼까요?
<유명한 사람들의 전생 이야기>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데이비드 뱅슨 박사라는 예언가가 있습니다. 이 양반이 며느리를 맞았는데 한국 여자분을 들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동안 잘 모르고 지냈던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겠죠. 명상을 통해 한국에 관한 역사를 훑어 가기 시작했더니 놀라운 비밀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렇게 배워 왔을겁니다.

"한국인들은 너무나 심성이 착하여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침략을 받은 국가이다." 

과연 이런 얘기로 그 수많은 침략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전생에 무슨 죄를 짓고 태어났길래 한국땅에 태어나서 그 모진 환란을 겪었던 것일까요?

뱅슨 박사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렇습니다.

한국은 영혼들이 가장 태어나고 싶은 곳이라고 합니다. 한번 태어남으로해서 몇생을 건너 뛸 수 있는 엄청난 공부의 장이요 신령한 땅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국토는 한정되어 있고 인구도 많지 않기 때문에 경쟁이 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원한다고 해서 모두 태어날 수 없었다는 얘기죠. 그럼 한국땅에 태어나지 못한 영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꿩 대신 닭이라고 중국, 일본, 몽골 등 그 주변국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는 한국에 환생할 기회를 기다리지 못한 영혼들은 직접 말을 타거나 배를 타고 건너왔던 것이고 그것이 각종 전쟁과 난리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과연 한국땅을 침범해 온 그들을 미워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연민이 솟아나지 않나요? 얼마나 오고 싶었으면 그런 방식을 써서라도 왔을까요. 지금 나도 과거에는 손에 창칼을 들고 한국땅을 넘어 온 왜병이나 몽고군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시비를 분별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조차 들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진실한 윤회의 체계요 연기법입니다. 윤회는 우리를 죄의식에 짓눌리게 하는 형벌 시스템이 아니라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 시키는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그래서 종국에는 사랑을 배우고 자비를 배워서 진아 속에 머물고 내가 사랑 그 자체인 진아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이러한 어려운 주제들에 관한 논의를 하면서 의식의 확장을 하게 됩니다. 쉽게 말씀드린다고 했으나 제가 일별하여 깨달은 범위내에서 설명을 드렸으니 모든 분들이 그렇게 느끼지는 못하셨을 겁니다. 참고는 하되...공부는 각자의 몫입니다. 여러분 공부에 겨자씨 만한 도움이 되었다면 그저 신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출처] 카르마와 인과응보 그리고 윤회 (멀더의 오컬트 아쉬람) |작성자 멀더